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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애슬론

철인되기(11) 2007년 수크 하프 아이언맨




2007년 7월 22일 sooke half ironman

지난 7월 22일엔 밴쿠버 아일랜드의 Sooke이라는 조그만 바닷가 마을에서 열린 하프 아이언맨 대회에 참석하였다. 원래는 지난 5월 중순경에 하프아이언맨 대회에 참가할 계획이었지만 당시 오른발에 피로골절이 생겨 참가하지 못하고 7월에 열리는 대회로 일정을 변경하였다. 하프 아이언맨 대회는 말 그대로 아이언맨 풀코스의 정확이 절반인 거리를 달리는 걸 말한다. 1.9km 수영과 90km 자전거, 그리고 21km 달리기로 이루어진 대회이다.

토요일인 21일, 가족들과 함께 호슈 베이(horseshoe bay)에서 훼리를 타고 나나이모(nanaimo)에 도착한 뒤 바로 수크(sooke)로 이동하여 대회 참가자 패키지(번호표와 수영모, 타이밍 칩 등 대회에 필요한 물품들)를 픽업하고 자전거를 대회장소에 거치한 뒤 1.9km 수영을 할 영 레이크(young lake)를 둘러보았다. 

세바퀴를 돌아야 1.9km를 끝낼 수 있는 조그만 호수였다. 물빠짐이 좋지 않은지 호숫물은 시커멓고 연꽃같은 식물들이 가장자리를 가득채우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씨에다 먹빛 호수를 내려다보니 마음도 무거워진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시체들로 가득한 호수를 바라보는 것 같다. 
'맑은 물에서 해도 호수수영은 부담스러운데 이렇게 시커먼 물에서 수영을 해야한다니...... '

도망가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힘차게 저으며 나약한 생각들을 떨쳐내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앞으로만 나아갈뿐이다. 옆에서 걱정스러운 듯이 쳐다보는 혜승에게 무거운 표정을 보이기 싫어 얼른 호숫가를 벗어나 숙소를 예약한 빅토리아(victoria)로 차를 몰았다.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 몸의 컨디션엔 문제가 없었지만 어둡고 습한 날씨는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래도 숙소를 찾아 오는 길 옆에 펼쳐진 운하의 아름다운 모습이 잠시나마 마음을 가볍게 한다. 숙소는 Scotsman이라는 한국분이 운영하는 모텔이었다. 길가에 있어 차소리가 들리는 것을 제외하면 그런대로 묵을만 했다. 특별히 신경써 주신다며 큰 방을 내어 주셨다. 덕분에 넓은 숙소에서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놀며 즐거워 한다. 이제 녀석들이 어느정도 자라서 이렇게 여행도 함께 다닐만 해졌다며 혜승과 기뻐하였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여행을 즐거워하기는 커녕 괴롭고 힘들다는 기억을 남길까봐 우리는 오랜동안 기다려왔다. 이제 점점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며 그 즐거움을 만끽할 세월들이 다가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다음날 새벽 4시경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혜승이 끓여준 죽을 먹은 뒤 대회 장소로 이동하였다. 혜승은 나를 대회 장소에 내려 준 뒤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곤히 자고 있을 아이들을 챙겨 점심 무렵 결승선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줄기차게 내리던 비로 멈추고 날씨는 흐렸지만 대회를 진행하기엔 무리가 없어 보였다.

준비를 마치고 웻수트를 입는데 밴쿠버에 사는 후배 김상형이 아내와 함께 도착하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대회시작이 얼마 남지않은 시간이어서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호숫가에 섰다. 작은 대회인지라 참가자가 릴레이팀을 합쳐도 70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지난 스콰미쉬 대회처럼 물속에서 답답함을 느끼게 될까봐 열심히 몸을 움직여 보고 미리 물에 들어가 시커먼 물에도 적응을 시도해본다.

7시가 약간 넘고 하늘은 조금씩 밝아진다. 안내방송에 따라 모두들 출발선에 섰다. 상형이와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긴장을 풀었다. 아주 작은 손길에도 막막했던 심정이 풀어진다. 함께 할 사람이 있다는 건 이렇게 좋은 거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세상살이의 축복이다. 드디어 출발신호가 울렸다. 

  




몸싸움을 하기 싫어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약간 늦게 출발하였다. 미리 준비한다고 했지만 시커먼 물 속에 들어서니 갑갑증이 일어 호흡이 곤란해진다. 잠시동안 평영을 하며 호흡을 가다듬은 뒤 자유형을 시도하였다. 갑갑한 호흡곤란은 덜해 졌지만 힘을 써서 역영을 하기엔 힘들었다.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수영을 했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하나 둘, 하나 둘,...... 한 팔 한 팔의 스트록에 집중하면서 수영을 하다보니 어느덧 세바퀴가 끝나고 땅에 올라섰다. 바로 앞에 상형이가 보인다. 수영시간 42분 44초.

상형이와 함께 스윔-바이크 트랜지션(swim-bike transition)에 들어서서 웻수트를 벗고 자전거 탈 준비를 한다. 상형이가 먼저 나가고 곧이어 내가 따라 나섰다. 새벽까지 비가 내린 탓에 도로는 아직도 군데군데 물기가 마르지 않은 상태이다. 지난 스콰미쉬 대회에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상처가 아직도 다 낫지 않은 상황이어서 미끄러운 도로 위를 달리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내리막과 급커브를 만날 때면 간이 콩알만해져 브레이크를 잡아야만 했다. 특히 내리막길에선 도로의 상태도 울퉁불퉁해서 더욱 조심스러워 졌다. 

'어차피 목표는 한달 앞으로 다가온 아이언맨 대회인데 훈련 삼아 참가한 하프 아이언맨 대회에서 다치면 무슨 낭패인가? 훈련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달리자.'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생긴다. 날씨가 흐리고 가끔 이슬비가 내리는 날씨이다. 바닷가 마을이어서 자전거 코스가 바다를 끼고 달리는 것 같은데 짙은 안개가 껴서 도무지 바다의 풍경은 볼 수가 없다. 그나마 콧속으로 밀려드는 바다의 비릿한 물내음에 '바로 옆에 바다가 있구나!'라고 느낄 뿐이다.



총 네바퀴를 도는 코스는 너무나 지루하다는 느낌이었다. 짙은 안개가 껴서 주변을 볼 수 없다는 것도 큰 이유였을 것이고, '훈련삼아 달리자'는 생각에 별다른 긴장감없이 달리다 보니 이 또한 지루함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드디어 지루한 자전거 코스를 마치고 바이크-런 트랜지션(bike-run transition)에 들어 섰다. 자전거 시간 3시간 19분 19초. 느려도 너무 느렸다. 내가 너무 늦게 자전거를 마쳐서인지 대부분 자전거만 달랑 놓인채 비어있다. 서둘러 런닝화를 갈아 신고 주로에 들어 섰다. 

자전거 코스에서는 그리도 빨리 잘 달리던 사람들이 달리기는 왜 이리 느린 것일까? 무수한 사람들을 추월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조그만 시골마을이라서인지 수영, 자전거, 그리고 달리기까지 한번에 끝나는 법 없이 몇 차례 왕복하는 코스로 구성이 되어 있다. 이러한 코스 구성이 무척이나 사람을 지치게 한다. 달리기는 두 번 왕복하는 코스인데 이 곳에서 앞서간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상형이도 만났다. 

"어! 형 무슨 일 있었어요? 왜 이리 늦었어요?"라며 걱정하길래 아무일 없었다며 어서 뛰라고 말 한 뒤 더욱 속도를 올렸다. 지친 사람들을 하나 둘 추월하며 힘차게 달려 나간다. 응원나온 사람들이 모두들 "You look very strong!"이라며 추켜주어서 더욱 신나게 달릴 수 있었다. 

두번째 왕복에서 허벅지 앞 쪽 근육에 수상한 신호가 온다. 조금 더 속도를 내면 쥐가 날 것 같아 약간 속도를 늦추어 본다. 아주 미묘한 경계선 같은 걸 느낄 수 있다. 그 선을 넘어서면 바로 쥐가 날 것 같은. 그 경계선을 넘지 않으려 내 몸의 상태, 근육의 작은 반응에 온 신경을 집중해 달린다. 이렇게 정신을 집중하니 달리기를 하는 동안에 무슨 요가나 명상을 하는 느낌이다. 내 몸과 대화를 하는 신기한 경험이기도 하다.

드디어 마지막 언덕이 보인다. 그 너머가 결승선이다. 몸에 남아 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 달려 나간다. 언덕의 정점을 넘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결승선 주변에서 환호하며 들어서는 사람들을 축하해주고 있다. '멋진 모습으로 결승선에 들어 서야지!' 마지막 힘을 쏟아 스퍼트를 해본다. 박수와 환호가 들려오고 혜승이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모습이 보인다. 수영과 자전거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달리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그 탓에 결승선을 통과하니 서 있을 힘도 없다. 그래도 위험한 수영과 자전거 코스를 무사히 넘기고 달리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추월하며 역주(力走)할 수 있었기에 뿌듯한 성취감이 가슴에 고인다. 



이제 아이언맨 대회만 남았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회 기록을 정리하면,

총 5시간 53분 06초로 전체 46명 중 20등(릴레이팀을 제외한 등수), 남자 32명중 13등의 기록이었으며, 
종목별로는 수영 42분 44초로 51위-자전거 3시간 19분 19초로 41위-달리기 1시간 43분 40초로 13위의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