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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정우찬?/엣세이

[조화로운 삶]을 읽고 (2005년 10월 24일)

"많은 이들이 월급에 기대어 먹고 살며 도시의 아파트나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식구를 먹여 살리는 일뿐 아니라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사람들을 살기 힘들게 한다. 그래서 자기를 옭아 매고 있는 이 답답하기 짝이 없는 데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소박하고 단순한 생활을 하기를 꿈꾼다. 삶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식구들과 친구들의 걱정 어린 충고와 알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발길을 가로 막는다. 그러기에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많은 세월을 보내고 ,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이런 글로 시작되는 '조화로운 삶(Living the Good Life)'은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이 1932년부터 버몬트 시골에 내려가 살았던 스무 해를 기록한 책입니다.

휘슬러를 다녀간 '천사 김선영님'이 이번 한국행에서 저에게 선물해 준 책입니다. 처음엔 

"아니, 왠 귀농(歸農)이야기를 나에게? ... 스키 접고 농사 지어야 하나?"라는 의아한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펼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이 단순한 귀농자가 아니라 치열하게 시대를 고민하던 사상가들이었슴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시골생활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책의 시작에 적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생활,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남,
무엇이든지 쓸모 있는 일을 할 기회,
그리고 조화롭게 살아갈 기회."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많은 부분을 자유시간으로 갖는 것이다. 

단지 먹고 사는 일에서 벗어나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일에 몰두하고, 이웃들과도 결실이 있는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홀로 또는 집단의 한 사람으로 사회를 개선하는 일에 열정을 쏟을 수 있기를 꿈꾸었다."


제가 그들과 같은 대단한 사상가는 아니지만 캐나다 휘슬러로 이민을 결정하고서, 스키하나 달랑 매고 휘슬러를 찾아올 때의 마음속엔 헬렌과 스코트와 같은 비장한 결의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오직 그 하나의 열망으로.

말 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낯선 이방인의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막막함,
가진 것 없이 이민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온갖 고단함과 설움들에의 두려움, 
아내와 아이들에 대해 느끼는 가장(家長)으로서의 부담감.


이러한 감정들은 마치 헬렌과 스코트가 시골로 향할 당시의 마음과 큰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 내지는 걱정들을 이겨내게 하는 힘은 그것들을 포기했을 때 내가 살아야할 삶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허무였습니다. 헬렌과 스코트와 같은 거대한 이상을 꿈꾼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였다는 것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먹거리를 장만하는 등 차차 시골 생활에 적응해 나갑니다. 또한  채식주의, 근면, 검소, 취미생활, 명상 등의 자신들만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그들이 원하는 삶을 찾아 수도승과 같은 생활을 해나갑니다. 그런 생활의 기록들을 이 책은 적고 있습니다. 자질구레한 농사 이야기며 먹거리 이야기, 집을 짓는 이야기들이 지루할 법도 한데 저는 어느덧 그 속에 완전하게 몰입된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그들이 가진 이상(理想)에 동조하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는 삶을 살기 때문인가 봅니다.  

헬렌과 스코트는 그들의 삶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먹고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하는 것은 풍요롭고 보람 있는 삶 속으로 들어가는 문간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삶을 제대로 꾸려 갈 수 있을 만큼만 생활 필수품을 얻는 일에 매달렸다. 그 수준에 이르고 나면 먹고 사는 문제에서 완전히 눈을 돌려 취미 생활과 사회 활동에 관심과 정열을 쏟았다."

"사탕, 과자, 고기, 청량음료, 술, 차, 커피, 담배 따위는 전혀 사지 않았다. 우리는 옷이나 치장에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열다섯 해 동안 기름과 초로 어둠을 밝혔다. 우리 집에는 전화기나 라디오가 없었다. 세간살이들은 거의 다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이었다. 한 달에 두 번 넘게 시내에서 물건을 사는 일도 없었고, 따라서 우리가 돈 주고 산 물건은 한 해를 통틀어 얼마 되지 않았다."


제 삶을 헬렌과 스코트의 삶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사람들의 삶에 비한다면 어느정도 그들의 삶에 더욱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운동하고, 일하고, 가족과 함께 즐기는 휘슬러에서의 생활은 지극히 단조롭습니다.
적은 수입과 단조로운 생활은 자연적으로 검소한 삶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겨울이면 세계 최고의 스키장 가운데 하나인 휘슬러에서 마음껏 스키를 즐기고,
여름과 가을엔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의 정해진 시간을 일하고 나면 언제나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자연의 한 복판에서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직장 혹은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한국에 비할 바 없이 적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건강한 몸, 균형 잡힌 감정, 조화로운 마음, 더 나은 생활과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꿈을 간직한 삶은 그것이 혼자만의 삶이든 집단의 삶이든 이미 바람직한 삶이다."

헬렌과 스코트가 글을 마무리하며 내리는 결론은 이미 제 생활과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의 기록과 평가는 어쩌면 제가 살아야할 삶을 먼저 살아낸 선배들이 전해주는 소중한 조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자신이 직접 집을 지으며 느끼는 감동들은 저에게 각별하게 다가왔습니다. 한국에서와 달리 캐나다에서는 인건비가 엄청나게 비싸서 이것저것 손보거나 직접 만드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그동안은 집을 렌트하여 사용하였으므로 집에 손을 댈 수 없었지만 직접 내 집을 갖게 되니 원하는대로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은근하면서도 사정없이 재미나는 일이더군요. 최근 집안에는 두가지 큰 공사(?)가 있었는데요. 하나는 키친 카운터 탑(Kitchen Counter Top)을 설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식탁(Dining Table)을 만든 것입니다.




부엌과 거실이 너무 뚫려 있는 것 같아 혜승이가 불편해 했었는데 다른 집에 가보니 키친 카운터 탑(Kitchen Counter Top)이 있어서 부엌과 거실을 어느정도 분리해주는 역할을 하더군요. 그리고 바(Bar)와 같은 아늑한 분위기도 있구요. 하지만 이것을 전문가를 통해 설치하려니 최소 $1,000 이상의 엄청난 비용이 들겠더군요. 혜승과 머리를 맞대고 몇달간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간단하면서도 깔끔한 카운터 탑을 만들어 냈답니다. 그것도 재료비 $150에. 비용의 절약도 달콤했지만 그것보다는 직접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기쁨에 한동안은 바라만 보아도 입가에 미소가 걸릴 정도로 행복하였답니다. 새벽에 요기(尿氣)가 일어 잠깐 볼 일 보러 나왔다가도 한동안 불을 켜고 만져보고 더듬어보며 흡족해 하곤 했죠.  


"사람이 집을 짓는 것은 새가 둥지를 트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만일 사람이 자기 손으로 집을 지어 단순하고 정직하게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면, 새가 그런 일을 하면서 언제나 노래하듯이, 사람도 시심이 깊어지지 않겠는가." 

- Henry Thoreau의 [Walden]에서, 1854년

 



또한 겨울동안엔 이러저러한 일로 파티를 하는 일이 많은데 집안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4인용 테이블 밖에 없어서 불편한 적이 많았습니다. 키친 카운터 탑을 만들어낸 자신감에 사로잡힌 우리 부부는 또다시 일을 저질렀죠.^^*  궁리를 거듭한 끝에 그동안 평상으로 쓰이던 것을 개조해 10인용 식탁으로 만들었답니다. 만들고 나니 넉넉한 저녁식사 뿐만 아니라 마음도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우리들을 한동안 가슴 벅차게 하는 일이었죠.

"살면서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자기가 살 집을 짓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 사람들은 거기에만 골몰하게 된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방과 부엌을 어디에 꾸미는 게 좋을지 몇십 번도 더 계획을 고쳐 본다. 땅을 파기 시작하면 손수 삽을 드고 나선다. 그 때 흙은 정말 달라 보인다. 다른 흙보다 더 가깝고 살갑게 느껴진다. 기초벽을 세우고, 들보며 기둥으로 대강의 일층의 틀을 잡은 다음에는, 깊은 생각에 잠겨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방을 들락달락한다. 또 달콤한 공상에 빠져서 들보 위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다." 

- John Burroughs의 [Signs and Seasons]에서, 1914년


이런 기쁨들을 맛보고 있던 차에 이 책을 접하고 나니 이젠 내집을 직접 만들어야 겠다는 커다란 욕심이 생겨 났습니다.^^* 아직 멀고 먼 이야기겠지만 직접 우리가 살 집을 짓는다는 것은 저에겐 또다른 꿈이 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내륙에는 휘슬러보다 두 배나 많은 적설량에, 환상적인 드라이 파우더, 그리고 일년 열두달 스킹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 스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살 조그만 마을을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가장 먼저 우리집부터 시작해야 겠죠? 그럴려면 내년 여름엔 카펜터(Carpenter) 일을 배워야 할까 봅니다.^^* 





정우찬: 선영씨 고마워요. 저에게 새로운 꿈을 주셨네요.^^* 아이디로 사용하시는 walden이 의미심장하네요. 선영씨를 조금 더 이해한듯......집 지을 때 선영씨도 와서 도와주실거죠?^^*  [10/24-18:25] 

김선영: 책 선물 해봤지만 독후감 쓰시는 분은 처음이세요.^^ 공감 하실거라 짐작은 했지만... 그 이상이에요. 작은 선물하고 큰 감동 받았습니다.^^* 언니에게 [소박한 밥상]도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안 하길 잘한 것 같아요. 그 거 읽고 언니가 공감하면...삼겹살에 소주 좋아하는 분들 큰일이거든요. 더 큰 일은...스킹할 힘도 없으실까봐...^^ 거기 이런 글이 있지요... “손님에게 아침 식사를 대접할 때는, 방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10/24-21:07] 

김선영: 식사는 점심때 해도 된다는 선택권을 주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ㅋㅋㅋ   만드신 가구들 훌륭해 보여요. 저 정도 솜씨면 따로 안 배우셔도 될 듯...수세식 화장실 만드는 법만 배우시면 되겠네요.^^*  [10/24-21:09] 

김관중: 혜승씨 said she needs to have 따듯한 물나오는 목욕탕 as well. 우찬씨 점점 어려워 지네.   [10/25-14:16] 

sunny: 내 방은 이왕이면 뜨끈뜨끈 허리 지질수 있는 온돌방으로 부탁해요...형부~~~^^  [10/26-00:17] 

차재문: "낯선 이방인의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막막함" 을 잘 이겨내시고 사시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가구가 잘 만들어진것 같네요,,주인의 "정"이 실린듯,,  [11/05-1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