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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정우찬?/저를 소개하자면

내 삶의 화두(話頭)가 되어버린 스키


스키?
아니? 우찬이가 스키강사? 그것도 세계적 권위의 CSIA 레벨3?.......????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 그 중에 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동안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황당스럽게 다가올 만한 일일것입니다. 저 또한 스키에 이처럼 빠져들줄은 몰랐으니까요.
지금부터 스키가 내 삶의 화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스키를 처음 신어본 것은 1995/96 겨울입니다. 95년 가을부터 시작한 산악회 활동은 내 생활을 180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산(山)은 내가 살아가면서 겪었던 어떤 경험보다도 커다란 중량감으로 내게 다가왔습니다.
절벽에 매달려 혼신의 힘을 쏟아내며 한발 한발 오르는 암벽등반의 가슴 뛰는 전율.
주말마다 도시를 떠나 산에서 맛보는 자유.
토요일 저녁, 키보다 높은 배낭을 메고 하나 둘 야영장으로 찾아드는 산 사람들. 그들과 즐기는 삼겹살과 소주 한 잔, 안주보다 맛나는 바위 이야기, 사는 이야기,......
그렇게 산을 만나면서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산악회에서는 봄~가을까지 주로 암벽등반을 즐겼고, 겨울엔 빙벽등반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폭포가 얼어붙는 기간이 두 달 안팍이라 그 이외의 시간들엔 웍킹산행을 즐기거나 스키를 탑니다. 스키를 타는 이유는 산악인들의 꿈인 해외원정등반시 완만한 경사면에서
아주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97년 북미최고봉 맥킨리(알래스카 소재)를 오를 때도 켐프3까지 스키를 이용하였습니다. 스키장에 가면 산악스키를 타는 산악인들을 가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96년초의 대명홍천스키장.
지금도 스키장에 가면 자주 보는 풍경이지만 초보자들 모아 놓고 멈추는 법, 회전하는 법을 잠깐 설명하고는 곧바로
"자~ 스키는 넘어지면서 배우는 거야. 리프트타자~!"
이렇게 산악회의 스키캠프는 시작되었고, 처음 스키를 타는 회원들은 얼마나 넘어지고 또 넘어졌는지....그 날 스키장에서 내 평생 스킹의 절반 이상을 넘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산악회 선배들을 통해 처음 스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 해엔 4번 정도 스키장에 갔습니다. 모든 스키초보자에게 처럼 저는 그렇게 스키에 입문했습니다.

아쉽게 첫 시즌을 보내고 96년 여름엔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백화점(?)에서 스키셋트를 마련했습니다. 당시 45만원 정도 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모두가 중저가 제품이라서 사실 한 시즌도 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신었던 Lange부츠는 제 발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악몽같습니다. 어쨌든 스키를 처음 산 날엔 너무도 행복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96/97년엔 산악회 선배중 스키를 가장 좋아하던 두현이형과 스키장에 좀 더 자주 다녔습니다. 아마 10여번 정도. 그 때 두현형에게 패러렐턴의 기본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당시엔 강습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따라다니기' 였는데 그 것 자체가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행복했던 느낌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습니다. 아마 그 때 형이 이것 저것 가르치려 하면서
"야 그거 그렇게 하면 안돼,..... 이건 이렇게 해야지,.... 너 그 것도 못하냐?..."
라고 했다면 지금의 나는 단지 일년에 서너번 스키타는 관광스키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곳 휘슬러에서 보면 캐나다의 강사들은 한국의 강습과는 스타일이 많이 다릅니다. 아마도 스키장의 외부적 조건 자체가 많이 다른 탓도 있겠지만 이 곳에서는 '배우기'보다는 '즐기기'에 역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강사의 스킹을 유심히 지켜보고 단지 따라 다니며 즐깁니다. 스키장의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트리런(Tree Run)'을 즐기고 범프도 즐깁니다. 강사는 가끔씩 지적해 주고 팁(Tip)을 주거나, 엑서사이즈(Exercise)를 줍니다. 그러나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역시 '펀(Fun)'입니다. 


스킹의 가장 중심적인 기술은 밸런스(Balance)입니다. 스킹에서 밸런스를 향상시키는 것은 역시 다양한 사면에서 많이 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스키가 '얼마나 재미있는' 운동인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역동(Self-motivation)이 생기면 그 때부턴 단지 길잡이 역할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행복한 스킹을 이끌어 주었던 두현형에게 감사드립니다.


1997년 여름, 북미최고봉 맥킨리를 등정하고 돌아온 뒤 나는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였습니다.
알래스카의 드넓은 설원위에 우뚝 솟은 맥킨리봉은 2,000미터 고도의 랜딩포인트로부터 시작하여 4,000미터이상을 셀파의 도움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야 하는 극지입니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50도에 이르고, 화이트아웃(white-out)이 되면 며칠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죽음과 가까운 그 곳, 그러나 밤에도 해가 지지않는 백야의 신비가 가득한 아름다운 그 곳에서 나는 운명처럼 나의 삶을 결정지었습니다. 자연(自然)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로...

그 해에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회사가 대명홍천스키장의 유스호스텔 운영을 맡고 있는 회사여서 그 해 겨울은 내내 스키장에서 보냈습니다. 스키 많이 탔냐구요? 아니요. 스키타는 사람만 신나게 구경했습니다. 결국 스키도 많이 못타고 그 해 겨울은 아쉽게만 보냈습니다. 이 때까지 제 수준은 그저 패러렐을 흉내내는 정도였구요. 숏턴은 흉내도 못내던 상태였죠.

98/99년엔 주로 보광 피닉스에서 스키를 탔습니다. 당시에 제가 다니던 이벤트 회사에서 스키캠프행사를 주로 피닉스에서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처음 [하이텔 스키마을]을 만나게 됐고, 당시 피닉스에 시즌방을 구했던 '불새파'친구들과 어울려 몇 번 스키를 타곤 했습니다.
우물안 개구리의 시절에서 '스키를 타는 사람들'의 세상을 알게 된 것이 이 때부터 입니다. 세상엔 저같이 스키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해에 [스키마을]의 스키캠프에 참석했던 것도 나에겐 아주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 때까지 나의 스키수준은 그저 일반인들중 '괜찮게 타는' 수준일 뿐이었습니다. 실제로 스키를 탄 횟수를 생각해도 스키매니아들의 수준엔 한참 모자라고 아마도 열심인 주말 스키어 정도의 상태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나의 고민이 '완중경사에선 숏턴이 되는데 왜 급경사만 가면 망가지는 거야?'였거든요.

하지만 이 때까지 스키가 나의 삶의 화두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키가 내 삶의 화두로 자리잡은 것은 하나의 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신문을 통해 접한 양성철의 기사였습니다.
'GOD OF SKI'라 불리는 캐나다의 레벨 4를 한국인 최초로 취득한 그의 기사와 북미최고의 스키장으로 꼽히는 '휘슬러-블랙콤'에 대한 글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정말 '첫 눈에 반할만한 여인'을 만났을 때 처럼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찾는 것이! 기왕에 스키를 탈려면 세계 최고의 스키장에서 타야지. 이거라면 한번 내 인생을 걸어볼만 하겠는걸..."

마치 첫 사랑의 여인을 발견했을 때 했을 법한 감탄을 내뱉으며 기뻐했습니다.

스키를 타면서 나보다 스키를 잘타는 사람을 수없이 보아왔고,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하였지만 한번도 내가 '꼭 그들처럼 되어야 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양성철과 그가 스킹을 즐기는 '휘슬러-블랙콤'은 정말 특별한 느낌으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마치 운명처럼 다가오는 그 느낌은 반드시 그 곳에 가서 스킹을 해봐야 하겠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 때 이후 본격적으로 캐나다에서의 스킹을 꿈꾸고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턱도 없이 부족한 스킹실력은 정말 저에겐 꿈처럼 이루기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습니다.다른 무엇보다 먼저 스킹실력을 향상시켜야 했습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수많은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고, 많은 고수들을 동호회를 통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말스키어로서 아마추어 이상의 스킹 실력을 갖춘다는 것은 정말 타고난 운동 능력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준강사이상의 실력자들은 대부분 선수출신이거나 스키장에서 강사나 패트롤을 했던 사람들, 그것도 아니라면 한두해 이상 시즌 내내 스키만 탔거나 10년 이상 스키를 열심히 연습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제가 나름대로 여러가지 방법을 알아 보다가 선택한 방법은 패트롤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패트롤은 모든 아마추어 스키어들에게 동경의 대상입니다. 먼저 그 검게 그을은 얼굴과 붉은색 패트롤복이 무엇보다 스키어들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그들이 보이면 모든 스키어들의 시선이 집중됩니다. 한국의 스키어들이라면 한 두번쯤은 누구나 그런 패트롤을 꿈꾸어 보았을 것입니다. 나 또한 그런 패트롤을 동경해왔었기에 내 스킹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스키장에서의 패트롤 근무를 계획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99년 가을, 산악회 선배 조낙현형님을 통해 지산스키장의 장동인 패트롤대장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패트롤을 하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서른이 넘은 나이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당시 지산스키장은 서울근교의 '가장 잘 나가는 스키장'으로 인식이 되면서 확장일로에 있었고, 실버슬로프를 오픈하면서 많은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쉽게(?) 패트롤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직장을 그만두고 수입도 턱없이 부족한 패트롤 아르바이트를 해야하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선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어쨌든 내 계획대로 99/00시즌에 지산스키장에서 패트롤로 일하며 정말 열심히 스키를 탔고, 어느정도 스키실력도 늘어 시즌말에는 패트롤과 준강사 자격을 딸 수 있었습니다. 정상급 스키어의 길은 멀고도 멀지만 어쨌든 그 첫 봉우리를 올라섰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스키강사는 다 선수출신들이야. 일반인들은 평생 타도 스키강사되기 힘들어." 처음 스키를 타기 시작했을때 산악회 선배님에게 들은 말입니다. 그 말이 전적으로 옳은 말은 아니지만 그만큼 일반인들이 강사급의 실력을 갖추기는 어려운 일이란 말뜻으로 이해한다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닐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어느 때보다 가슴 깊이 느껴졌습니다.

그 후 이민을 준비하고 하나 하나 준비하여 결국 이 곳 휘슬러까지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꿈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그 꿈을 이룬 사람들이 많지 않은 걸 보면 여기까지 온 것도 참 힘든 길인가 봅니다. 하지만 힘들다는 것을 느낄 여유조차 없이 내가 가진 꿈에 몰두하다보니 어느덧 이 곳에 오게 되었네요.

내 삶의 화두(話頭)인 스키.
수많은 정상급 스키어들이 있지만 그들 가운데 누구도 '스키는 이런거야'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스키는 정말 풀기 힘든 화두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화두에 한 발 두 발 다가가면서 느끼는 것은 행복(幸福)입니다.
이제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눈보라치는 산 정상에 서면 또 다시 운명처럼 되묻겠지요?
'너 왜 스키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