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번엔 세번째 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세번째로 이루고 싶었던 꿈은 북미대륙 최고봉인 맥킨리(Mckinley/6,194m)를 오르는 것이었습다. 자세한 등반의 내용은 "'97 청화산악회 맥킨리 등정기"와 "6,000미터 위에서의 사랑"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에서는 "맥킨리 등정"이라는 목표가 어떻게 제 꿈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과 결과를 통해서 제가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 지에 촛점을 맞추겠습니다.
한창 등반에 열중해 있던 96년 가을.
전문등반을 시작한 지 일 년 밖에 안됐지만 등반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뜨겁던 우리들은 우연한 기회에 맥킨리 등정에 관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등반을 위해 바쳐져야 하는 힘겨운 훈련과 많은 시간들, 그리고 최악의 순간 죽음마저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고산등반을 선뜻 결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죠.
하지만 고민은 며칠가지 않았습니다. 산(山)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애인이었으니까요. 그 친구를 만나러, 그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두려움은 커다란 장애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순간을 기다려 왔었으니까요.
산악인(山岳人)에게 있어 산행은 단순한 즐거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즉, 삶을 즐기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산행(山行) 그 자체가 삶입니다. 사회생활이란 어쩌면 그런 산행을 위한 방편일뿐이지요. 어쩌면 산이 좋아 산악인이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산악인으로 태어났기에 산과 함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악회원들과 마주앉아 맥킨리의 사진들과 자료들을 펼쳐보면서 나는 이미 그 오만한 자태에 매료되어 버렸습니다. "맥킨리"를 가슴에 품은 이상 "갈까 말까"라는 고민은 순식간에 "과연 흰 산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설레임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점차 원정대의 윤곽이 나오면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으로 돌입하였습니다. 매주 토, 일요일은 북한산 혹은 도봉산에 모여 팀웍에 촛점을 맞춘 등반훈련 및 장거리 산행을 빠짐없이 진행하였고, 개인적으로는 지구력과 심폐능력 향상을 위한 트레이닝을 하였습니다.
저는 아침마다 예술의 전당 뒷 산인 우면산을 뛰어 올랐는데 처음엔 수없이 뛰다 걷다가를 반복하며 정상의 소망탑까지 올랐지만 이듬해인 97년 봄에는 한번도 쉬지 않고 정상까지 뛰어 오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멈추면 죽는다."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원정대를 최초로 발의했을 때는 총 5명의 산악회원이 참가하였지만 개인적인 사정들로 인해 두 사람이 원정을 포기하면서 원정의 계획 또한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나 혼자만이라도 해낸다"라는 원정대장님의 각오때문에 나머지 대원들도 다시한번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원정은 계획대로 진행되었습니다.
1997년 5월 20일 알래스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원정대는 5월 22일 경비행기로 광활한 알래스카 산맥의 빙하지대에 도착하면서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지옥의 입구처럼 쩍쩍 입을 벌린 크레바스로 인해 발을 내딛기가 두려웠고, 고도를 높일수록 차가워지는 날씨와 힘겨운 호흡은 말로만 듣던 고소증세를 동반하기 시작했습니다.
캠프3를 올라서면서부터 원정대원들의 얼굴이 많이 부어올랐고, 추위로 인해 깊은 잠은 들 수가 없었습니다. 캠프4인 맥킨리 시티(Mckinley City)에서는 눈보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이트아웃(white out)에 갇혀 며칠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했습니다. 이 와중에 한국의 계암산악회 팀은 9명의 원정대가 왔지만 고소증세가 심해져 7명이 하산하면서 2명만이 캠프4에 잔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혹독한 상황이었지만 저는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과 백야(白夜)의 신비속에서 오히려 그 어느때보다 맑게 깨어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살아있다"라는 느낌을 그처럼 확실하게 느낀 적이 과연 삶을 살아오면서 있었던가? 단연코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극한상황에서 오히려 마음은 너무나 평화로웠고 진지했습니다.
마침내 6월 2일.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곳, 정상(頂上)에 올라 섰습니다. 힘겨운 노력끝에 그 곳에 올라섰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감동은 없었습니다. 이미 정상을 오르기 이전부터 나는 충분히 감동해 있었고, 느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정상에 오르고 안오르고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맥킨리를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수많은 날 들에 우면산을 뛰어 오르고, 북한산과 도봉산의 능선을 쉬임없이 오르내리면서 꿈꾸던 그 곳에 내가 마침내 왔다는 것, 그리고 그 곳을 애써 오르는 것 만으로도 나는 이미 꿈을 성취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결과는 그 과정으로 인해 더욱 값진 법입니다. 꿈은 그 꿈을 만들고 애써 노력하는 과정에서 아름답습니다. 이미 그 꿈이 실현되면 생각만큼의 감동은 없습니다. 꿈이 실현되는 순간 인간은 또 다른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항상 무엇을 위한 과정으로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