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인라인스케이팅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여름입니다. 스키에 도움이 될거라는 조낙현 선배님의 말씀때문이었지요. 당시에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일요일마다 모이는 인라인 다운힐 모임에 나갔었습니다.
그 곳에서 처음 인라인 타는 법을 배우고 몇 번의 모임에 참석했었는데 당시엔 월드스포츠(현재의 '스포츠 2000')직원들과 몇몇 스키매니아들이 모인 십여명 정도의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 후 이 곳이 인라인 다운힐의 명소로 알려지면서 점차 모임이 커져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 같더군요.
그렇게 스킹을 위한 비시즌 운동으로 처음 인라인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저를 사로잡은 인라인의 매력은 다운힐이 아니라 로드런이었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처럼 거친 호흡소리,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의 설명할 길 없는 상쾌함, 속도감과 함께 느껴지는 자유의 느낌,....그런 것들이 스키와는 다르게 인라인만의 매력을 발산하더군요. 그 매력을 느끼면서부터는 다운힐보다는 로드런에 더 깊이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라인 스케이팅이 인기를 끌면서 제 주변의 사람들 또한 인라인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해 가을부터는 그 중의 몇몇 사람들과 함께 '드림네이처(dreamnature)'라는 인라인 동호회를 만들어 매주 수요일마다 한강에서 로드런을 즐겼습니다.
누군가에게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달리는 재미에 타다보니 그나마 조금씩 인라인을 타는 요령도 생기게 되더군요. 더군다나 동호회내에 서로의 체력이 비슷한 사람들이 생기면서 점차 본격적인 로드런이 시작되었습니다. 서로의 자세를 지적하면서 보다 나은 스케이팅을 위해 하나 둘 자세를 바꾸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겨울로 접어들기 시작. 인라인은 창고속으로 들어가고 스키에 매달려 00/01 시즌을 보냈습니다. 시즌 첫 스킹을 지산에서 했었는데 그당시 저는 나름대로 인라인으로 다운힐을 연습했으니 많은 도움이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왠 걸....오히려 적응이 되질 않아 넘어지길 몇 차례....다음엔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슬로프를 몇번인가 오르락 내리락해도 감은 올 생각을 안하고...나중엔 프르그 보겐부터 다시 시작해서 겨우 패러렐 롱턴 정도의 감을 잡았었습니다. 그 후 시즌 초반엔 한동안 감을 잡지 못해 인라인을 타면서 입력된 근육의 정보가 오히려 스킹에 방해가 된 것은 아닌지 한동안 고민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라인스케이팅으로 회전을 할 때는 몸기울이기(내경각)를 많이 활용하는 반면 스킹시에는 피봇팅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적응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요즘엔 스킹시에도 이전보다 훨씬 큰 몸기울이기를 사용하므로 이러한 부적응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네요.
어쨌든 시즌 초반의 이러한 부적응에도 불구하고 인라인을 타면서 향상된 체력은 분명히 저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당시의 지산리조트를 '왜 이리 짧아?'를 연발하며 헤집고 다녔으니까요.^^
이듬해 2001년 봄부터는 본격적인 동호회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동호회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인라인스케이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어서 모두가 출중한 실력들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동호회 모임을 주로 여의도 한강 고수부지에서 가졌기때문에 우리들이 주로 로드런을 한 장소는 여의도~반포대교 고수부지를 왕복하는 코스였습니다.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여의도 한강고수부지에 모여 몸풀기를 한 뒤 반포대교를 향해 출발하면 시원한 저녁바람이 우리를 맞아주곤 했습니다. 인라인 로드런의 매력은 스키와 마찬가지로 바람을 가르며 지나가는 맛일 겁니다. 쭉쭉 앞으로 달려나갈 때의 느낌은 마치 내가 사람이 아닌 말이 라도 된 듯 주변풍광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갑니다. 그럼 더욱더 신나서 달려나가곤 했지요.^^
물론 처음엔 호흡도 많이 가쁘고 근육에 알도 배기고,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앞으로 숙이고 달릴 때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 통증이었죠. 하지만 한두달 지나면서 호흡도 안정되고 허리와 다리의 통증도 줄어들었습니다.
동호회 인원들도 점차 늘어나고 스스로도 더욱 인라인의 매력에 빠져들 즈음 우리들 앞에 '인라인 마라톤 대회'라는 멋진 목표가 생겨났습니다. 그 해 5월쯤 '제1회 엑스빌 인라인 마라톤 대회'가 열린 것이죠. 동호회에서는 회의를 통해 단체로 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대회를 앞두고 나니 스케이팅에 더욱 집중이 되더군요.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주법을 숙달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하면서 달리면서도 이런저런 시도들을 많이 해봤습니다. 당시엔 더블푸쉬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 고전적인 주법을 사용하여 달렸으며, 상체를 많이 숙이면 그만큼 허리의 통증이 커지므로 공기저항을 감수하더라도 상체를 약간 펴서 달렸습니다.
이렇게 트레이닝을 한 달 정도 하고 난 뒤 드디어 대회를 맞이하였습니다. 대회는 올림픽경기장 주변도로를 도는 것으로 치뤄졌는데 아마 한바퀴를 돌면 5km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20km 주자들은 경기장을 네바퀴 도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출발대기선에 서니 처음 나서는 대회라 무척이나 긴장이 되더군요. 그래서 오히려 동호회원들에게 격려의 말을 던지며 긴장을 풀기위해 노력했습니다. 정확한 인원수는 모르겠지만 30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출발선에 서니 앞자리는 처음부터 치열한 자리다툼에 감히 초보자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 같아 아예 뒤로 빠져서 중간쯤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렇게 자리싸움을 하는 이유가 있더군요. 출발신호가 떨어진 뒤 500m이상은 뒤섞여 달리는 사람들 때문에 제 속도를 내기가 힘들더군요. 그들을 추월하느라 최단거리를 유지하기도 힘들고 일정한 속도유지도 어려웠거든요. 하지만 1km정도 지나면서부터는 사람들의 속도에 따라 대충 위치가 정해지면서 안정된 속도유지가 가능해졌습니다.
5km, 10km참가자들이 빠지면서부터 주자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앞서가는 몇 사람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바짝 따라붙으며 마지막 남은 한바퀴에서는 꽤 많은 사람들을 추월해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드디어 피니쉬라인이 눈에 보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결승점 주위를 에워싸고 각자 자신의 동호회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환호를 지르며 맞이하더군요. '드림네이처' 동호회원들의 응원소리에 마지막 힘을 다해 결승점으로 골인.
5km와 10km에 출전한 선수들 모두가 함께 모여 20km구간에 도전한 사람들을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결승점을 통과한 뒤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하며 공원안으로 들어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음식과 음료수들을 나눠먹으며 대회에 대해 서로가 즐겁게 이야기하며 결과발표를 기다렸습니다. 한시간 정도가 지난 뒤 모든 참가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각 구간별로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아바'나 '웁스'등 대규모 인라인스케이팅 동호회에서 함께 유니폼을 입고 나와 동호회원들의 입상을 축하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의 자유스럽고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대회라기보다는 하나의 축제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더군요. 젊은 사람들이 주축이 된 인라인 동호회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좋은 기억의 자리였습니다.
드디어 모든 결과발표가 끝났습니다. '드림네이처'는 이제 갓 만들어진 조그만 동호회였지만 남녀 모두 상위권에 올라서 우리들 스스로가 그 결과에 놀랐던 대회였습니다. 모이면 줄창(?) 달리기만 했던 우리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나 봅니다.^^
대회는 5km, 10km, 20km의 세종목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이중 20km부문은 다시 4륜부와 5륜부로 나뉘어졌습니다. 저는 20km 4륜부에서122명 5위에 입상하였습니다. 당시 인라인 열풍이 불던 때라 수많은 사람들이 인라인을 즐기고 있었고, 많은 매니아들이 거의 매일 로드런을 즐기던 때에 주말 인라이너로서는 기대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두어서 저도 매우 기뻤습니다.
이제 2004년이니 벌써 3년전의 추억이 되어버렸네요. 이 곳 캐나다 휘슬러에서는 인라인을 탈 만한 공간이 없어서 거의 타지 못하고 있지만 아마 한국에 있었다면 요즘도 열심히 인라인에 미쳐 살았을 것입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던 그 자유의 느낌! 아마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한 추억일 것입니다.